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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현동 낙섬




의병 피 흘렸던 그곳, UN군 상륙

지금은 매립되면서 섬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지만 낙섬은 용현동 앞바다에 떠 있던 작은 섬이었다. 이 섬은 두 차례 국가의 안위와 관계된 사건이 있던 곳이다.

인천상륙작전 때 상륙 부대가 들어온 지점(블루비치)이었으며, 그에 앞서 병자호란 때는 인천 의병들이 청나라군과 치열하게 맞섰던 현장이다.

글·사진 유동현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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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인천상륙작전 30주년을 맞아 상륙지점 세 곳에 기념석을 놓았다(가운데 사진). 기념석에는 ‘1950.9.15. 유엔군 인천상륙 지점’이라고 새겼다. 이 기념석은 원래 용현동 정비단지 입구에 있던 것을 몇 년 전 실제 상륙지점(블루비치)과 가까운 곳(용정근린공원 아래)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원석 형태의 기념비는 1994년 현재 모양의 기념비로 모두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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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직전의 인천 지역 공중지도와 상륙 지점


자유공원에 서있는 맥아더 장군은 정면을 보고 있지 않다. 몸은 앞으로 향해 있는데 얼굴은 살짝 왼쪽으로 돌아가 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월미도 방향이다. 인천상륙작전때 유엔군이 상륙한 지점(그린비치)이다.

만약 더 얼굴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바로 옆 상륙지점인 대한제분공장 쪽으로도 향했을 것이다. 그곳은 레드비치이다. 나머지 한 곳을 더 보려면 고개를 많이 돌려야 한다. 용현동 쪽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륙은 인천의 남쪽 해안인 낙섬 부근(블루비치)에서도 이뤄졌다.

낙섬은 또 다른 전쟁의 현장이다.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1604년 용현동에서 태어난 이윤생은 의병을 모집하여 낙섬에 들어갔다. 강화도에서 남한산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에 맞섰다.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결국 패하고 의병들과 함께 34세 나이에 전사했다. 그 소식을 접한 부인 강 씨는 곧 바다에 몸을 던졌다.

후에 철종은 정려를 내리고 그를 좌승지에, 강씨를 숙부인으로 봉했다. 정려(旌閭)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동네에 세운 건축물이다. 현재 남구 독배로 404번길 34(용현동)에 시도기념물 제4호인 이윤생·강씨(李允生姜氏)정려가 있다.

낙섬은 조선시대 때 ‘원도(猿島)’라 불렸다. 이 곳은 서해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동해는 강릉, 남해는 순천에서 국가제사를 지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원도는 인천도호부 서쪽 12리 되는 곳에 있는데 제단이 있어 봄·가을로 산과 바다에 제사 지낸다’고 기록돼 있다. 매년 봄, 가을마다 지방 수령인 인천부사(현 인천시장)가 직접 나와 제사를 지냈다. 왕조의 안위와 백성의 안녕 그리고 풍농, 풍어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 상징적인 장소였다. 원도의 존재는 지도에도 명확히 나타나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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