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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과 천안 Ⅵ




글 김명진[경북대학교 사학과 문학박사(한국사, 고려 태조 왕건 전공)]


왕건 관련 콘텐츠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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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량동에서 바라본 태조산. 가운데 봉우리가 태조산 정상


고려 태조 왕건(高麗 太祖 王建)이 천안(天安)이라는 고을을 만들었는데, 이는 무한한 콘텐츠를 선물한 것이다.
 
천안의 탄생 과정 이모저모는 관광자원화하기에 매우 유용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왕건과 천안의 인연을 어떻게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천안은 콘텐츠가 없다고? 정말?

가을에 전국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축제라는 것이 우리의 생활에 가까이 있게 됐다.

모든 시군들이 축제하느라 시끌벅적하다. 각 시군에서 하나의 축제는 만족하지 못한다하여 몇 개씩 개최한다.
 
그런데 어떤 콘텐츠로 할까 고민이 많다.

특히 그 고장과 연관된 역사적 의미가 강조되면서 축제를 하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있다.

하지만 각 시군의 콘텐츠가 고만고만하고 화끈한 주제가 없어서 고민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러 시군에서 축제가 무리한 내용으로 진행되어 비난의 뉴스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역사적 근거가 없는 ‘카더라’를 가지고 축제 콘텐츠로 활용하여 논란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해달라는 시민의 물음에 근거 없이 무언가 하겠다는 행동은 낭비만 소비할 뿐이다.

그런데 천안은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문제는 활용을 더디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천안은 그 인구 및 크기에 비해 관광산업이라 할 만한 부분이 별반 없었다.

축제와 관광도 인구가 뒷받침된다면 훨씬 개발하기 쉽다.

천안은 약 69만 명이라는 인구로 인하여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은 이미 1,100여 년 전에 왕건이 흩뿌려 놓았다.


‘천안의 날’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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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통일 완성을 위해 충청지역의 새로운 거점을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바람 때문에 천안부[天安府, 천안도독부(天安都督府)]가 만들어졌다.
 
왕건은 대목군(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일대)에 행차하여 태조산에 올라 그 서편을 바라보았다.
 
현 천안 주요 시가지를 바라보면서 다섯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갖기 위해 다투는 천하 명당이라 칭송하였다.
 
고을 이름은 천안(天安)이라 하였는데 그 날짜가 930년 음력 8월 8일이었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서 그 탄생일이 명확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국사에서 도시 탄생 시기가 명확한 희귀한 사례 중 하나가 천안부 탄생이었다.
 
이를 ‘천안의 날’로 정하여 기념한다면 그 날짜 덕이 크리라 생각된다.

이날을 ‘천안부의 날’, 또는 ‘천안도독부의 날’이라고 하면 시민들은 다소 어렵게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천안시의 날’이라고 하면 너무 현대적인 표현이 되리라 여겨진다.

따라서 ‘천안의 날’이라고 하면 천안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수용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이 명칭은 시민들이 외우기 쉽기 때문에 홍보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
 
음력을 기념일로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추석과 설날은 음력을 쇠는 우리의 대표 명절이다.

사월 초파일도 음력이 사용되는 날이다.

지방에서도 음력을 기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다.
 
천안부가 탄생한 음력 8월 8일은 추석 일주일 전이므로 음력이지만 외우기 쉽다.
 
‘천안의 날’을 음력 8월 8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축제를 여는 날로 정한다면 의미가 클 것이다.
 
이날이 바로 천안의 생일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음력 8월 8일 8시(오전, 오후) 8분 8초라는 시간이 기념된다면 듣는 이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어 지리라 여겨진다.
 
8이라는 숫자가 넘치는 팔팔한 도시 천안이 될것이다.
 
여기에 덤이 생산될 수 있다.

중국어 문화권에서는 8이라는 숫자를 돈을 벌게 해준다하여 매우 좋아한다.

천안의 날, 8이 강조가 된다면 중국어 문화권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왕이 등산한 태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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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930년 음력 8월 8일에 목천쪽에서 어느 산으로 등산하였다.
 
이 산을 왕건은 임금 왕자(王字)처럼 생겼다 하여 왕자산(王字山)이라 부르게 하였다.

뒷날 왕건이 세상을 뜨고 난 다음에 언제부터인가 태조 왕건이 올랐다 하여 왕자산이 태조산(太祖山)으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산이 바로 시내에 있는 천안 시민들이 편하게 종종 오르는 태조산이다.
 
왕건은 877년에 태어났다.
 
따라서 이때 왕건의 나이는 54살(만 53살)이었다.
 
한국사에서 왕이 특정 산을 등산했다는 기록은 잘 나타나 있지 않다.
 
더군다나 왕의 등산 날짜가 명확히 나타난 경우 또한 희귀한 경우이다.
 
이 또한 이야기가 있는 천안의 역사자원이자 관광자원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등산 유전자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등산이 생활 속에 있고 산악회 활동을 많이 한다.
 
해외 동포들이 타향에서 한국의 산이 그립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우리의 산은 사랑받고 있으며 그 사랑을 확인하기라도 하듯이 많이 오른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등산할 때 과시 심리가 있다고 한다.
 
앞산을 등산해도 복장은 히말라야를 등산하는 복장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
 
명품 또는 명품 짝퉁이라도 입어야 등산이 가능하다며 웃는다.

태조산의 정상 높이는 421.5m이다.
 
1,100여 년 전에 고려 국왕 왕건이 등산한 태조산을 오르며 체력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한다.
 
여기에 더해 정상에 올라 땀을 식히고 나면 재미있는 행동이 하나 추가될 수 있다.
 
임금 왕자(王字)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태조산 자락 어디가 임금 왕자인지 찾아보면서 왕건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왕건이 목천쪽에서 태조산으로 올랐다 하므로 그 길을 찾아서 ‘천안 왕건길’로 이름 붙이어 홍보하면 더욱 유명세를 받으리라 여겨진다.
 
‘천안왕건길’은 태조산의 새로운 등산 코스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왕건 관련 콘텐츠가 넘치도록 많이 있다.
 
이를 다 소개하지 못하는 지면 부족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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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대학교 사학과 문학박사
(한국사, 고려태조 왕건 전공)
김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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