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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이 낳은 영웅, 충무공 김시민 장군




‘사사처’가 들려주는 그 용맹한 이야기

자료 「천안의 전설 여행」 저자 김기창


천안에도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충무공이 있다.

바로 임진왜란 3대 대첩인 진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충무공 김시민 장군(1554년~1592년)이다.

김시민 장군은 어릴 때부터 어찌나 용맹스러웠던지 재미난 일화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후손은 김시민의 고향인 목천현 백전리(현 병천면 가전리)에 그의 용맹스러움을 기념하는 비(碑), ‘사사처(射蛇處)’를 세워 김시민 장군의 기개를 알리고 있다.

나라를 구한 영웅 김시민 장군의 어릴 적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원님의 행차를 막고 김시민이 들은 말은?

김시민(金時敏)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기골이 장대했다.

병정놀이를 좋아하고 언제나 대장이 되어 지휘하곤 했다.

여덟 살 때였다. 길가에서 병정놀이를 하고 있는데 마침 원님 행차가 시민이 놀고 있는 병정놀이 구역을 지나가게 되었다.

원님의 수행원이 길을 비키라고 하자 김시민은 “한 고을 사또가 감히 진중(군대나 부대의 안)을 통과할 수 있느냐?”라고 호령하면서 조금도 기가 꺾이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원님이 말에서 내려 김시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큰 재목감이로구나.” 하면서 길을 비켜 지나갔다고 한다.


어린 시민이 활을 쏘아 무찌른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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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 김시민 장군상과 이무기를 활로 쏴 무찌르는 어린 김시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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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처기념비와 거북바위, 그리고 400년 넘은 보호수 느티나무


김시민이 아홉 살 때 일이다.

김시민이 태어나 살던 백전마을(잣밭마을) 입구에는 백전천(지금의 병천천)이 굽이 돌아 흐르고 있었다.

이 백전천가에 물이 잠긴 바위가 있고 그 속에 큰 굴이 하나 있었는데 그 굴속에 큰 이무기(전설상의 동물로 뿔이 없는 용.
어떤 저주 때문에 용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서 산다는, 여러 해가 묵은 큰 구렁이)가 살았다.

이무기는 때때로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하고 가축에게 해를 끼쳐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가 제발 사라지길 바랐다.

이때 김시민은 이무기를 물리칠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고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뱀은 뽕나무 활에 쑥대 화살로 쏘아 잡는다는 고사를 읽게 됐다.

김시민은 마을 아이들과 더불어 활과 화살을 끼고 가서 느티나무에 의지하고 선 채 마을 아이들에게 바위에 올라가게 했다.

아이들 그림자가 물에 비치자 이무기가 물 가운데에서 쑥 나타나 아이들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그때였다.

김시민이 재빠르게 화살을 연속해서 쏘아 이무기를 쓰러트렸다.

김시민의 화살을 맞고 죽은 이무기가 어찌나 컸는지 10여 일이나 이무기의 붉은 핏물이 흘렀다고 한다.

현재 백전천은 매립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백전마을 어귀 ‘김시민 장군 유허지’에 노거수와 거북바위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이곳이 활로 이무기를 쏘아 맞힌 사사처임을 표식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후손인 김재홍 씨가 김시민의 어릴 적 용맹함을 단번에 알 수 있도록 사사처(射蛇處) 비를 느티나무 앞에 세워 놓아 방문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김시민 장군 유허지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66호로 지정돼있다.


함께 기리는 김시민 장군

김시민 장군은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1592년 진주대첩에서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대접전을 벌여 3,800명의 병력으로 3만 왜군을 무찔러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왜구로부터 경상도 지역을 보존하고 전라도 땅을 노리지 못하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김시민은 성곽을 순찰하다 숨어 있던 왜군의 총탄을 이마에 맞아 안타깝게 1592년 10월 18일 3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만다.

천안에서는 김시민 장군 유허지 보존은 물론 천안 삼거리 삼룡동에 ‘충무공 김시민 장군상’을 세워 시민들에게 나라를 구한 영웅 충무공 김시민을 알리고 있다.

또한 김시민 장군이 진주목사로 있던 진주시에서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진주성 김시민 장군 전공비’를 보존하고 있으며 ‘김시민 장군 둘레길’을 조성해 김시민 장군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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