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효영― 수지구 풍덕천2동동도 트지 않은 새벽녘
수탉이 울음도 안 울었는데
윗집 개, 옆집 개 짖지도 않았는데
어스름한 마당에 더듬더듬 발 디디더니
할무니는 감나무 아래 평상을 훔치기 시작한다
장판도 떨어져 보기 흉한데
구부정 허리도 못 피는 구순 할무니는
새벽이슬이 앉은 평상을 훔치고 또 훔친다
이내 자리잡은 거무튀튀 자글자글 할무니는
동네 어귀를 향해 앉아 동트기를 기다린다
무엇이 보이는지 하루 온종일 평상 귀퉁이에 앉아 바라만 본다
평생을 사랑하고 모든 걸 다 주어버린 큰 아들
야무지고 똑똑한 큰 딸
사고란 사고 다 치고 소식이 끊겨버린 예뻤던 가운뎃 딸
싹싹하고 착한 막내 딸
애지중지 아까운 막둥이 아들
자식처럼 키운 손녀딸들
버스도 지나가고
승용차도 지나가고
동네 사람도 지나다닌다
귀는 먹었어도 치매에 걸렸어도 할무니는 하염없이 바라본다
“할무니 저희 왔어요.”
할무니 엉금엉금 무릎으로 반기신다
할무니 얼굴에 주름꽃이 피었다
“오메 내 새끼들 왔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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